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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의 40대 직장 여성과 MZ직원과의 싸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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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우뚝 선 그녀 라라 정희경 작가를 만나다


BY 아줌마닷컴 2010-11-23



 

아줌마의 인생은……

온몸으로 겪어내야만 하는 것……

그래서 질퍽하고 피곤하고 불확실하지만

결국 가치 있는 것……

 

늙어 가는 남자에 대한 연민도 사실은 사치였다. 그들의 사랑을 지켜보며 소외감을 느끼는 것은 자신의 인생을 좀먹는 일이었다. 자신을 기만하는 일을 이제 그만두기로 했다. 살아야만 했다. 사람답게 살아야만 했다. 그것은 사람으로서의 생이 아니었다. ‘나 자신에게로 돌아가자. 그곳에는 행복이라는 것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행복해지고 싶다.’” <한 남자 두 집>

 

아줌마닷컴 사이버작가 공간을 드나들다 보면 삶에 대해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삶이란 질퍽하고 알 수 없는 것……

피곤하고 불확실하지만 결국 가치 있는 것……

 

아줌마닷컴 사이버작가 라라님……

아줌마들이 보고 아는 그런 삶이 아니라

진작 만나 뵙고 차 한 잔 하고 싶었던 라라님을 만나 뵙게 되었습니다.

 

아줌마닷컴 사이버작가 공간에 모인 우리 아줌마들을 울고 웃게 만들었던 라라님

<시앗>에 이어 <한 남자 두 집>으로 작가로서 세상에 나선 라라님을 만나봅니다.

 


Q 오늘 문인협회 모임이 있다고 하셨었는데 잘 다녀오셨나요? 오늘 모임 이야기를 잠깐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A , 연말이고 해서 문인협회에 나갈 일이 많아집니다. 오늘은 시인들과 함께 자리를 했죠. 질문하신 것처럼 문인들이어서 뭔가 많이 다르다 그런 것 보다는 시인들도 결국 생존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생존이란 단어가 등장하니 조금 불편하시다구요? 아직 문인들을 더 만나보지 못했고 속내까지 이야기한 것이 아니니까요. 지금 요청하신 것처럼 더 많은 문인들을 만나보고 더 속 깊은 이야기를 앞으로 나누어 볼게요. 생존 앞에서는 누구나 비슷해질 수밖에 없다는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그리고 문인협회도 하나의 사회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보편적인 사회의 특성을 문인협회도 가지고 있어요.


Q 문인협회 질문을 드리면서 이 질문이 생각났어요. 한 때정희경이라는 이름을 세상에 드러내지 못하던 시절이 있으셨어요. 표지에 있는 이름 세 글자가 참 반가웠습니다. 세상과 커뮤니케이션 하실 때 정희경이라는 이름을 드러내시면서 어떤 생각이 드셨는지 궁금합니다.


A 세상이 환하게 보인다고 해야 할까요? 정말 내 이름을 걸었을 때 세상이 환해졌어요. 실제적으로요. 정희경이라는 이름과 함께요.


Q 연말이니까 이런저런 일로 바쁘실 것 같습니다. 요새 어떻게 지내시는지 근황을 소개해주시면요.


A 작가는 시동이 걸려야 글을 쓸 수 있어요. 시동이 걸리지 않으면 글을 쓰지 못합니다. 항상 글쓰기 위한 시동이 걸리도록 하기 위해서 나를 만나고 준비하고 기회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시동이 걸러야 글이 써지는 것이 작가이기 때문입니다.

 

자전적인 이야기를 수필로 소설로 출간했다면 앞으로는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더욱 더 많이 풀어내고 싶어요. 취재를 하지 않으면 소설을 쓸 수 없습니다. 사람들의 이야기를 취재하고 있습니다.


Q 어떤 이야기인지 궁금합니다.


A 여자의 인생에 대해 더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실종된 남편을 찾는 여자의 이야기, 역사의 아픔을 불가항력적으로 삶으로 받아들여야 했던 여자들의 이야기를요.

 

사실 소설 작업을 할 때 조금 어려움이 있었어요. 나의 경우는 화려한 미사여구나 톡톡 튀는 문장보다는 속내를 집어서 사용하는 문장을 사용하죠. 많은 소설이 조금 화려한 문장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아요. 담백한 문장을 사용하는 편인데 소설 쓸 때 그런 부분에서 약간 어려움이 있었어요.


Q 저는 작가님의 툭 내뱉는 듯한 그런 담백한 문장 속에 진실이 보였기 때문에 더 울컥했습니다.


A 네…… 이전에 아줌마닷컴 사이버작가를 통해 세상과 소통을 시작했을 때 그 때는 정말 몸이 타 들어갈 정도로 아팠어요. 토해내지 않으면 안 되는 그런 아픔이어서 제가 말하는 한 마디 한 마디가 더 아프게 사람들에게 다가갔던 것 같아요.

 

결혼하고 남편의 반대로 글을 쓸 수 없었어요. 남편은기자, 작가 이렇게 글 쓰는 여자를 정말 정말 너무나도 싫어했죠. 하지만 일기는 꾸준히 써왔습니다. 꾸준하게 써 온 일기가 글쓰기의 기반이 된 것 같습니다.

 

여자들은요. 내 배로 낳은 내 자식을 만나면 자식들이 내편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자식은 남편의 자식이기도 하고 결국 남편의 편이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많이 나아졌다고 하지만 아직까지는 남자의 권위가 더 중심인 우리나라 사회에서 나의 자식이 아닌 남편의 자식을 알아야 해요. 작은 예를 하나 들면 시댁 관련 속상한 이야기를 자식들에게 나누어서는 안됩니다.

 

여자들의 사랑은 하나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남자들의 사랑은 둘일 수 있어요. 처음엔 그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지만 지금은 인정을 합니다. 남자들의 사랑이 정확하게 둘일 수 있다는 것을요.


Q 우리 아줌마들에게 응원을 많이 받으셨을 것 같아요. 사이버작가에도 라라님을 응원하는 분들이 많으시구요. 작가로서 팬들의 응원에 대해 이야기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A 아줌마닷컴에서 많은 분들의 응원을 진하게 받았습니다. 도와달라고 그녀들에게 말한 적이 없어요. 그런데 그녀들은 성금을 모아서 나에게 보내주었고 가까운 곳도 아니에요. 경기도 오산에 있는 나를 돕기 위해 대구에서도 미국에서도 연락이 왔어요. 어느 날은 밑반찬이 어느 날은 핸드폰을 어느 날은 성금이 그렇게 진하게 연락들이 왔네요.

 

오산 집을 도배해주시고 가신 분도 계셨고 아.. 맛있는 만두김치도 생각납니다.

 

처음엔세상에이 사람들 다들 뭐 하는 사람들이야?’ 이런 생각을 했어요.

 

같은 아줌마로서 그녀들은 나를 그냥 지나갈 수 없었던 거죠. 응원을 보내 준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그녀들의 응원이 나에게 정말 큰 힘이 되었습니다. 지독하게 그리고 진하게요.


Q <한 남자 두 집> 267쪽에 나온나 자신에게로 돌아가자. 그곳에는 행복이라는 것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행복해지고 싶다.’ 개인적으로 저, 이 구절에 정말 울컥했습니다. ‘행복해지고 싶다란 말이 이렇게 가슴 사무치는 단어가 될 지 몰랐네요. 아직 겪은 것이 많이 없는데도요. 행복한 인생, 쓰라린 인생…… 이제는 편하게 그 시간을 회상해 보시면요. ‘행복이란 무엇일까요?

A 많은 여자들이 가족 안에서 행복을 찾습니다. 그리고 사회에서도 가정 안에서의 행복을 대부분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그런 행복에 익숙하고 그런 행복이 성취하기도 쉬어 보이고 안락해 보이고 그렇게 보여요. 하지만…… 그러한 행복이 쓰러졌을 때의 그 때의 행복에 대해 우리들은 잡고 있어야 합니다. 여자로서의 자기 행복은 쥐고 있어야 합니다. 내가 무엇을 잘할 수 있는지,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게 바로 중심이에요. 여자들은 절대 자신을 잊지 말아야 해요. 자신을 잊으면 안됩니다. 가족 안에서만 안주하지 말고 자신을 지켜야 합니다.



Q 손녀딸, 아드님…… 자랑거리 좀 소개해 주세요.


A 일주일에 한 번 손녀딸을 만나요. 손녀딸은 영리하고 애교가 정말 많아요. 작은 아들은 참 재치가 있고 말을 잘합니다. 소위 말발은 아니고 정말 깊이가 있는 말을 진심 어린 말을 잘합니다. 나의 작품 활동에 대해서도 진심 어린 충고를 해주기도 하고 출판계 현실을 이야기 해주기도 하지요.


Q 오산 청학동에 계시는 것으로 알고 있고 수목원에도 요새 가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산책하는 시간에 대해 소개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A 자연은 우리에게 편안함을 주지요. 산책을 좋아하고 자연 속에서 나와 이야기하면서 많은 이야기를 찾습니다.


Q 가장 식사를 먹음직스럽게 만드는 곳이라고 소개해주시고 싶은 맛집이 혹시 있으세요?

 

A 음……특별하게 맛집을 찾아 다니는 것은 아닌데 오산에 정말 맛있는 초계탕집이 있어요. 맛집은 그곳을 추천하고 싶네요.

 

 

Q 용서…… 이제 삼십 년 조금 넘게 산 저도 사실 용서하기 어려운 사람들이 종종 있습니다. 용서를 했다기 보다 시간이 지나가면용서하기 어려웠던 그 사람들을 잊고 사는 것 같아요. 좀 민감한 질문일 수 있지만 만약 정말 용서하기 어려운 사람들이 잘못을 빌고 용서를 구한다면 다 용서를 해야 할까요?

 

A 용서요. 모두에게 적용시킬 수는 없지만 용서하기 힘든 사람들은 진심 어린 용서를 구하지 않습니다. 진심 어린 용서를 구하지 않고 변화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데 용서란 말이 의미가 있지는 않다고 생각해요. 어떤 시절에 용서를 구한다는 말을 들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그 용서가 진심 어린 용서가 아니란 것을 결국 아프게 받아들여야 했습니다. 용서에는 진심이 따라야 합니다.

 


Q 결국 상업성을 갖추어야 하는 드라마를 통해 라라님의 작품이 영상화되는 것에 대해서는 조금 우려도 되고 그렇지만요. 라라님의 작품이 드라마로 만들어진다면 함께 하고 싶은 드라마작가 혹은 시나리오 작가가 있으세요? 보통 원작자가 있어도 프로덕션에서 드라마작가가 다시 대본으로 각색을 하니까요. 개인적으로 노희경 작가님 같은 분께서 함께 해주셨으면 하는 소망이 있습니다. 작가님의 이야기를 트렌디한 작가가 다루지는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A <한 남자 두집> 이야기를 드라마로 만들어보자는 이야기를 K 프로덕션(유명한 드라마 제작사)하고 나누고 있어요. 계약문제라 다 말할 수는 없지만 나의 이야기를 대본으로 함께 만들어 줄 작가로 음노희경 작가도 생각해 본적이 있는데노희경 작가는 이야기를 접하고 이금림 작가가 해야 한다고 말했답니다. ‘이 이야기는 언니(이금림 작가)가 맡아야 한다고 이야기를 건넸지요. 대본 쪽은 사실 정확하게 누가 하게 될 것이라고는 예측하기는 좀 어렵기는 합니다.

 

 

Q 오호! 이금림 작가님 같은 분이라면 저도 좋은데요. 트렌디한 젊은 작가가 작가님의 이야기를 만지지는 않았으면 그리고 대본 작업하실 때 꼭 작가님도 함께 많이 관여하셨으면 좋겠습니다.

 

A 드라마도 드라마지만 드라마만 바라보고 있지는 않아요. 앞으로 써 낼 이야기가 더 많으니까요.

 

 

Q 작가의 꿈을 가진 아줌마들에게 한마디 해주시면요.

 

A 많이 쓰고 공개를 해야 합니다. 등단을 하는 과정에 적극적으로 신청 하고 적극적으로 심사를 받아야 합니다. 글만 써도 등단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전에 드라마작가 과정을 공부하고 싶었던 시절에 아들 사고로 포기를 했어요. 드라마작가가 되는 길에 들어섰다면 지금의 위치가 조금 달라졌을지도 모르죠. 국문학 전공자라고 문인들의 세계에서도 그런 부분에 대해 코멘트를 받아요. 전공이 글을 쓰게하는 것은 아니랍니다. 글을 쓰는 자신을 중심이라고 생각한다면 어떤 형태로든 그 중심을 잃지 말아야 해요.

 

 

Q 작가로서의 라라님의 앞으로의 주요한 스케줄, 그리고오산에서 행복을 찾아가는라라님의 앞으로의 주요 스케줄을 소개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A 팬들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었지만 앞으로 전 여자들을 위해 더 일어설 겁니다. 우리와 동시대를 살아가는 혹은 우리의 선배가 되는 여자들의 이야기를 쓰고 싶어요. 장편소설도 되고 단편소설도 되는 여자들의 이야기요. 가족과 나누는 행복한 시간, 작품을 만드는 시간이 앞으로의 주요한 스케줄이 될 것 같습니다.

 

 

Q 아줌마위인전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이 질문은 모든 분께 공통으로 드리는 질문입니다. 라라님께서 생각하시는 아줌마의 정의는 무엇일까요?

 

A 아줌마는 힘이에요. 가정과 사회를 변화시키기도 하지만 누누이 말씀 드린 것처럼 절대 자신을 잃지 말아야 해요. 아줌마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것, 하고 싶은 것, 꿈을 잃지 말아야 해요. 아줌마는 중심을 지키고 있어야 합니다. 아줌마 스스로를 잃어버리면 스스로를 포함해 너무나 많은 것이 붕괴되고 말아요. 중심을 지킨 아줌마, 더욱 당당해져야 합니다.

 

 

                              (인터뷰 진행 : 아줌마닷컴 곽지희 / jhkwak@inuscomm.co.kr)
 

 

정희경 작가는

1947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어릴 적부터 글재주가 뛰어나 애국지사였던 할아버지로부터 글쓰기 교육을 받으라는 지시가 있었지만, 대대로 천주교 순교자의 집안에서 태어난 그녀는 수녀원에서 운영하는 성심여자중고등학교를 다녀야만 했다. 수녀 교육에 반발하던 그녀는 시와 수필을 계속 썼고 [학원]이라는 잡지에 글을 실어 학교에서 문제를 일으켰다.

 

연세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한 그녀는 학창시절 소설을 전공했다. 현대문학사 추천작가이던 연세대 박영준 교수의 제자로 소설작법을 개인교습 받기도 했다. 스물다섯 살에 결혼을 한 그녀는 철학을 전공한 남편의 반대로 글쓰기를 중단했다.

 

그런 그녀가 30년 만에 다시 글을 쓰고 출판을 한 동기는 남달랐다. 숨겨진 남편의 25년 된 여자의 존재를 알게 되면서 그녀는 인터넷 사이트에 자신의 상황과 심정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그녀의 글은 간결하면서도 청승스럽지 않았으며 반전의 통쾌한 재치가 있었기 때문에 많은 독자들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독자들은 그녀의 반전과 재치에 울고 웃었다. 지은 책으로는 [시앗 : 남편의 첩] 12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