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회원 분들에게 먼저 말씀 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이 분께서는 인터뷰를 극구 사양하셨습니다. 아직 순번이 되시지 않았다고 하시면서요. 하지만 운영자로서 집요하게 인터뷰를 요청 드렸습니다. 다른 훌륭한 사이버작가 분들을 인터뷰해야 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다른 사이버작가 분들도 꼭 모두 인터뷰 코너에 모시겠다는 약속을 드렸습니다.
유뽕이 어머님 아컴 사이버작가 박예천 작가님! 육아일기를 올려주시면서 아컴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보여주고 계시는 고맙고 감사한 작가님의 이야기를 아줌마위인전 코너에서 들어보고자 합니다. 박예천 작가님께서 ‘작가’란 호칭을 부담스러워하시리라는 것을 짐작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컴 운영자로서 저는 사이버작가에 글을 올리시는 모든 분들을 작가로 부릅니다. 절대 부담스러워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Q 박예천 작가님, 안녕하세요.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 드릴게요. (인터뷰를 통해 아컴 사이버작가 게시판이나 작가님을 처음 만나게 된 사람들이 있어서요.)
A ‘자기소개’라는 말을 참으로 오랜만에 듣는 것 같습니다.
막상 저 자신을 간략하게나마 알리려니 얼른 떠오르는 것이 없군요.
그 정도로 제가 평범한 아줌마라는 얘기죠.
강원도 속초 바닷가에서 남편과 딸아이 그리고 아들과 살고 있습니다.
Q 요새 어떻게 지내시는지 자세한 이야기들이 궁금합니다.
A 이미 아컴에 아시는 분들이 있겠지만, 제 아들은 발달장애아입니다.
녀석이 태어나면서부터 저의 일상은 늘 아들과 함께 합니다.
아침 일찍 시내에서 벗어난 학교에 등교시킨 후, 오전동안 밀린 집안일을 끝내고 컴퓨터 앞에 앉습니다. 구상 중이었던 글을 펼쳐보는 유일한 저만의 시간이지요.
점심을 먹고 나면 곧장 아들의 학교로 다시 달려가야 합니다. 오후 내내 치료실과 학원들 오가며 운전기사(?)노릇을 해야 하니까요.
어쩌면 새로울 것도 없이 매일 반복되는 생활이지요. 그 속에서나마 한 가닥 희망의 끈을 놓지 않으며 힘차게 살고 있답니다.
Q 아침에 일어나서 가장 먼저 하시는 일은 무엇이신지요?
A 눈 뜨자마자 우선 기도부터 합니다. 또 하루를 선물 받은 것에 감사하고, 주어진 날을 잘 살아내게 해 달라고. 아이들을 깨우고 식사준비 하는 것으로 아침이 열리지요.
먼저 일어난 남편은 마당을 돌며 밤사이 매달린 애호박이 있을까, 방울토마토가 익었을까 돌아보고 있고요.
Q 잠들기 전에 하시는 일은?
A 역시 기도를 합니다. 저는 기독교인이지요. 친정아버지는 감리교회 장로입니다.
할머니 대부터 물려받은 신앙관이 현재의 제 삶에 많은 영향을 주고 있답니다.
유뽕이도 습관이 되었는지, 제가 침대로 들어가며 깜박 잊기라도 하면 ‘엄마 기도해줘!’라며 먼저 말합니다.
Q 작가님의 십대, 이십대, 삼십대가 궁금합니다. (답변이 길어지실 것 같아 힘드실 것 같지만요……음…… 그냥 쭉 듣고 싶었습니다. )
A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이 궁금하신 것인지요. 질문의 범위가 좀 넓다는 생각이 드네요.
십대의 저를 기억하면 어른께 말대꾸 잘하고 괴팍한 성격이었던 것 같습니다. 누구든 옳지 못한 행동이나 말을 하면 참지 못하고 짚고 넘어가는 아이였습니다. 하물며 그 대상이 선생님 일지라도 가만있질 않았습니다. 버릇없다고 많이 혼났던 기억이 납니다.
책 좀 읽었다고 철학자 흉내도 내었지요. 인생이 어떻다느니 사랑은 이런 것이라며 잘난 체를 곧잘 했습니다. 덕분에 친구들은 제가 대단한 생각을 품고 사는 줄 알았는지 깊은 고민까지 의논하곤 했지요. 지금 생각하니 웃음이 납니다.
이십대는 부모님 품을 떠나 객지에서 지냈습니다. 품었던 꿈을 실현시키려 무엇이든 욕심 부렸던 시기이기도 합니다.
열정에 들끓었고 시도하면 다 이룰 수 있을 것이라 여기며 당당했지요.
과연 노력한 만큼 결실이 있어졌습니다. 하고 싶었던 일도 해보고, 여행도 많이 다녔습니다.
그러고 보니 첫사랑과의 아픈 이별도 이십대에 있었군요.
시행착오를 겪더라도 다시 도전하면 된다는 패기가 가득했던 때이기도 했습니다.
질문에 답하는 지금 순간, 갑자기 그 시절로 돌아가고픈 마음이 간절해지네요.
저의 삼십대는 온통 아들로 꽉 차있습니다.
녀석을 서른셋에 낳고 장애진단 받은 후, 울고 웃으며 보낸 세월이 삼십대입니다.
저 자신의 삶이 없어진 세월이기도 합니다. 희생만 하면 결실이 있겠거니 세상 모든 어미가 지녔을 심정으로 살았지요.
글을 쓴다는 것도 욕심이려니 생각되던 삼십대였습니다. 좀 우울한 시절이었지요.
Q 전 사이버작가의 예천 작가님 글을 보다 보면 ‘희망’이 새겨지는 것 같아요. 희망이란 게 잘되고 성공하고 그런 사람들이 저 같은 일반인들에게 전해주는 것 아닌 것 같구요. 진짜 희망은 평범해 보이는 주변의 이웃들에게서 보여지는 것이라고 생각해서요. 작가님이 생각하시는 ‘희망’……살면서 품고 있는 소망, 희망을 소개해 주세요.
A 저는 되도록 긍정적인 마인드를 갖고 삽니다. 굳이 안 되는 것에 연연하지 않으며, 감정회전이 빠른 편이지요.
희망, 또는 소망이라는 것도 그렇습니다. 너무나 터무니없이 현실과 동떨어진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을 자주 봅니다. 곁에서 봐도 전혀 실현가능성이 희박한 꿈을 꿉니다. 금방 이루어지지 않는 헛꿈이므로 좌절하고 포기하게 되지요. 그것은 욕심에서 비롯되지 않을까요?
욕심을 내려놓는 연습부터 해야 한다고 봅니다. 우선 낮은 높이에 꿈을 걸어두고 소망하는 겁니다. 소박한 꿈이 이루어졌을 때의 희열을 아십니까?
그 감동을 알기에 또 희망을 걸어두고 기다리게 되는 겁니다. 그것은 반드시 ‘인내’를 요구합니다.
이루어질 것을 믿고 기다리는 마음이야말로 희망을 이루는 필요요건이라고 생각합니다.
저의 희망은 장애를 지닌 아들입니다.
녀석은 저로 하여금 늘 꿈꾸게 하지요. 깊은 인내로 말입니다.
Q 열두 살 유뽕군이 불렀던 ‘땡벌’ 노래와 함께 가사 내용 중에 등장한 ‘지쳤다’로 작가님께서 예민? 하게 스스로 반응하셨던 그 글이 생각납니다. 나를 가장 힘들게 하거나 예민하게 하는 주제가 있다면 솔직히 무엇일까요?
A 사람에게 실망하게 되었을 때, 가장 못 견뎌 하며 힘이 들고 슬퍼집니다.
기본적인 양심을 상실한 모습, 나이 값을 못하는 어른들, 순수를 잃어버린 아이들.
그러나 가장 가까운 주변에서 저를 예민하게 자극 하는 요인은 역시 아들이지요. 엄마이기는 하나 저도 사람인지라 유뽕이의 장애특성상 발생하는 문제들을 대하며 지치게 되는 날도 있습니다. 곧 추스르고 정신을 차리기는 하지만, 의연하게 굳센 모습으로만 일관하지 못한답니다. 부족한 성품의 엄마이지요.
Q 작가님께서 글을 쓸 수밖에 없는 가장 절박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A 제 작가글방 ‘시간의 틈으로’의 소개 글을 보면, ‘글은 제가 살아있다는 흔적’이라고 적혀있습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전업 작가는 아니지만, 장애아들과 지내는 삶이 전부인 제게 특히나 글은 세상과 소통하는 유일한 도구입니다.
위에 질문에서 답했듯이 아들로 인해 지치게 되는 순간, 저의 앞은 캄캄한 절벽입니다. 그러나 글을 쓰는 순간만큼은 제 본연의 모습을 찾은 듯 벅차 오릅니다. 비로소 박예천으로만 서 있는 기분이랄까요? 글을 쓰며 얻어진 에너지로 다시 세상에 나가 살아냅니다. 아들과 손잡고 버텨낼 힘이 생겨주는 것이지요. 좀 거창한 표현 같지만, 제가 살기 위해서 글을 쓴다고 해야 할까요? 이것만큼 절박한 이유가 또 있을까요?
Q 글 쓰다 보면 두렵거나 그렇지 않으세요? 나를 너무 확 드러내고 있다던가 등 등이요.
A 글을 쓰는 자체가 곧 두려움입니다.
글의 전개상 나 자신을 드러내야 한다면 진실하게 임하면 되는 것이지요. 그리고 드러낸다는 범위가 어디까지냐 하는 것은 작가 스스로 수위조절을 하면 되겠지요.
제가 두려운 것은 독자들 앞에 과연 최선을 다해 임했느냐 하는 것입니다. 인터넷상의 수많은 눈들이 있고, 지나치며 읽게 되는 글이지만 그 속에도 전해지는 마음을 읽을 수 있습니다.
수필의 생명은 진실입니다. 가식적으로 꾸며낸 글이라면 금방 드러나지요. 독자들의 눈은 냉철합니다. 거짓 없이 임해야 하는 글쓰기가 저에게는 항상 만만치 않은 무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쓰게 되지요.
Q 얼마 전 ‘한 대 때리고 싶다’로 올리신 글을 보았습니다. 유뽕이 키우시면서 가장 화가 나실 때는요?
A 아마 이 질문의 답은 예견하셨을 겁니다.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대하면 화딱지 나고 때리고 싶어집니다. 차별하려면 제대로 알고 그 분야를 연구한 후에 자기들이 지닌 나름대로의 이론이라도 내밀던지.
발달장애아만 해도 그렇습니다. 구체적으로 자폐아라고 합시다. 열 명의 자폐아가 단 한 가지 교육방법으로 통하는 것은 아닙니다. 각각 장애아의 개별적인 성향이 다르지요. 헌데, 현장에서 근무한다는 교사들조차 기본적인 지식이 없습니다. 무조건 ‘자폐아는 이렇더라.’식으로 뭉뚱그려 장애아들을 대합니다.
일반학교마다 통합교육이 이루어지는 마당에 이토록 몰지각한 교사들이 넘쳐나고 있으니 한 대가 아니라 단체로 물볼기를 치고 싶은 심정이랍니다.
제 아들이 장애라서 그런지 유독 이 부분에서 필요이상 흥분(?)이 되는군요.
이해바랍니다.
Q 앞으로 유뽕이 어떻게 키우고 싶으세요?
A 유뽕이 뿐만 아니라, 딸아이에게도 제가 늘 하는 말이 있습니다.
‘네가 행복하면 돼!’
우리네 부모님들도 그러셨지요. 자식 맘대로 안 된다고.
제가 결정한 대로 녀석이 잘 커주면 좋겠지만, 그런 틀을 세워두면 기대가 생기고 부응하지 못했을 때 어미로서 좌절하겠지요?
좀 난해한 장애를 지닌 녀석이라서 무엇으로도 앞날을 장담하기 힘듭니다. 그래서 현재로선 아들이 행복한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그림이든, 음악이든 녀석만이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을 찾아가는 것이 급선무죠.현재는 뚜렷한 설계가 나오진 않았답니다.
그래도 우리 유뽕이는 아컴 아줌마들의 응원 속에 쑥쑥 크고 있으니 뭐라도 되겠거니 합니다.
Q 유뽕이는 예천 작가님에게 어떤 아들일까요?
A 아픈 손가락입니다. 옛말에 ‘열손가락 깨물어 아프지 않은 손가락 없다’라고 했지만, 아들은 그 중 유독 아픈 손가락입니다. 이름만 떠 올려도 무시로 눈물이 쏟아지는 아픈 저의 알맹이입니다. 껍데기인 어미는 그래서 장애아를 둔 엄마들의 소원대로 아들보다 하루만 더 살기를 소망하지요. 험한 세상에서 지켜주다 가고 싶어서요. 허나 늘 고통만 있는 것은 아니랍니다. 녀석은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메시지 전달자이기도 하지요. 지쳐있는 엄마를 기운 나게 하고 웃게 만드는 힘도 있습니다.
때 묻은 어른들의 가슴에는 없던 세상이, 아들의 눈높이에서는 무궁무진 펼쳐집니다.
해서 아들은 제 인생에 스승이기도 합니다.
Q 작가님의 가족 분들에 대해 소개해 주셨으면 합니다.
A 남편은 현재 고등학교 국어교사로 재직 중입니다. 성품이 곧고 대쪽 같아서 좀 피곤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옳지 못한 일에 끼어드는 일이 없고, 삶의 가치를 제대로 아는 사람입니다.
항상 자신이 가르치는 아이들에게 죄 짓는 기분이라며, 본인을 부족한 교사라고 겸손히 말합니다.
느슨하지 못하고 정해진 길로만 걷는 남편이 가끔은 답답하기도 하지만, 자신의 길에 자부심 갖고 임하는 태도엔 존경심이 우러납니다.
특히나 제가 남편 앞에 기죽는 부분은 방대한 독서량입니다. 손에서 책을 놓는 법이 없고, 다방면으로 편식하지 않으며 정독합니다.
남편과 저는 추구하는 삶의 방향이 같습니다. 그래서 행복의 가치도 배가 되지요.
그 점이 참 다행이라는 생각입니다.
팔불출 아내는 오늘도 남편자랑만 늘어놓습니다.
딸아이는 올해 열다섯 되었습니다.
한참 사춘기 겪느라 신경전을 벌일 때가 더 많습니다. 어릴 적부터 동생으로 인해 상처를 받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밝게 잘 커주었습니다.
엄마를 닮지 않아 키도 크고 얼굴까지 예쁘게 생겼답니다.
자기 동생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친구들 앞에서도 당당히 소개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공부도 곧잘 하고 피아노 치는 것을 좋아합니다.
다니는 학원은 한 곳도 없이 혼자 공부하는데, 중간고사 영어 백점, 국어도 백점이라고 자랑합니다. 물론 과학 수학도 최고 점수지요.
참 기특하고 대견하죠?
Q 얼마 전 에세이 방에 올리신 글.. ‘기도’ 생활을 하시는 많은 사이버작가 회원님들을 울리신 것 같아요. ‘기도’생활을 하지 않는 분들이 보시면 이런 질문을 뭐라 할지도 모르지만요. 솔직해서 아름다운 아컴 사이버작가이니까 이해하시리라 믿으면서 질문 드릴게요. 작가님께 ‘기도’는 어떤 것인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나 궁금합니다.
A 누구나 기도하는 마음으로 살지 않을까요?
저에게 있어 기도는 하나님과의 편안한 대화입니다. 높은 곳에서만 내려다보는 분이 아닌, 곁에서 친구나 가족처럼 존재한다고 믿습니다. 그렇기에 고민이나 소망도 때론 떼쓰듯(?)징징 거리지요.
생활하다가 문득 떠오르는 간절함이 있습니다. 부모님의 병환으로 가슴 아파하는 친구, 혹은 가정문제로 힘겨워하는 이웃의 숨결이 느껴질 때 기도하게 됩니다.
꼭 특정한 장소에서 무릎 꿇고 정자세로 거룩함을 취하는 태도가 아니어도 좋습니다. 설거지 하다가, 혹은 길을 걷다가 이야기하듯 손을 모읍니다.
저는, 기도란 마음먹는 순간부터 역사가 일어난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사랑으로 바라보며 기도의 대상을 떠올리는 순간, 벌써 소망하는 내용이 전달되는 것이라고.
저 혼자만의 편한 해석이 될까요?
에세이 방에 올렸던 제 편지글은, 여러 님들의 정성을 모으고 싶었던 마음이 컸습니다. 두 세 사람이 모인 곳에 함께 하시겠다던 성경말씀에 있듯이.
Q 평소 흥얼거리는 노래가 있으세요? (장르 구분 없이요)
A 저는 요즘 노래는 아는 게 없습니다. 흔히 대학가요제 곡이나 7080시대의 노래들을 즐겨 듣습니다. 제 글 어디엔가 있듯이, 한동안은 아들과 ‘어부의 노래’를 줄기차게 부른 적도 있습니다. 어느 날은 민요만 열심히 불러대기도 하고, 설거지하며 복음성가를 외치기도 합니다. 한마디로 제대로 할 줄도 모르면서 흉내만 내는 것이지요.
그러고 보니 노래까지 ‘좌 집적, 우 껄렁’하는 셈이네요.
요즘은 가을 노래를 불러볼까 계획 중에 있습니다.
아! 가을, 내 맘 아려나~~~.
Q 작가님께서 즐기시는 차가 있으신가요? 보통 글 쓰는 분들은 커피나 차 등을 좋아하시니까요. 궁금합니다.
A 인스턴트 커피를 마시기도 하고, 직접 만든 과일주스나 차를 즐겨 마십니다.
요즘은 여름에 걸러 두었던 살구차를 마십니다.
글을 쓴다고는 하지만 그윽한 분위기의 작가는 못되니 그저 주부의 모습에 더 가깝지요.
Q 살면서 ‘이렇게 일이 잘 풀리면 좋겠다’ ‘유명해 졌으면 좋겠다’ 소위 ‘세상적’이라고 해야 할까요? ‘솔직하다’고 해야 할까요? 그런 욕심들 없으셨나요?
A 작가로서의 욕심 말입니까? 아니면, 인간적인 욕심인가요?
저는 한 번도 자신을 작가라고 생각한 적이 없습니다. 그 타이틀이 많이 부담스럽습니다. 해서 작가로서 유명해진다는 욕심은 감히 가져볼 수 없습니다.
좀 특이한 성격인지 별다른 욕심이 없습니다. 현재 생활에 지극히 만족스럽고 행복하거든요.
그저 주부로서 갖는 평범한 욕심은 있습니다. 연료비나 물가가 많이 오르지 않았으면 하는.
딱히 떠오르는 게 없네요.
Q 앞으로 어떤 ‘박예천’이 되고 싶으세요?
A 글과 삶이 일치되는 박예천이고 싶습니다.
글 속에서 드러나는 제 모습이 진짜배기이기를 바랍니다.
좋은 글을 쓰고 싶습니다. 그래서 저는 함부로 살 수가 없습니다. 제 글에 삶이 다 보이기 때문이지요. 수필의 생명은 진실이라는 그 말이 맘에 듭니다. 잘 살아야만 좋은 글로 독자들과 만날 수 있다는 결론이 성립되거든요. 삶 자체가 글의 소재가 되니, 최선을 다해 살아야겠지요.
좋은 글, 곧 사람 마음에 감동 주는 글을 쓰는 박예천이었으면 합니다.
‘예천(藝泉)’이라는 필명을 선물하신 분의 속뜻 되새기며, 예술적인 감각이 샘처럼 솟아나는 글로 독자들에게 다가서고 싶습니다.
Q 작가님께서 ‘글 쓰는 아줌마’에 대해 정의를 내리신다면 무엇일까요?
A 그냥 아줌마가 아니고 ‘글 쓰는 아줌마’ 말입니까?
아줌마는 위치에 따라 다양한 이름으로 불려 집니다. 엄마, 아내, 며느리 등등.
1인 몇 역을 소화해낼 만큼 무한한 잠재력도 지녔다고 해야겠지요.
저는 아줌마라는 이름에서 가능성을 봅니다. 십대나 이십대에 가져봤던 꿈보다 더 확실한 가치의 발걸음을 내디딜 수 있는 위치가 바로 아줌마입니다. 험난한 역경까지 이겨낸 시절이 있다면, 지름길까지 터득했을 겁니다.
인생경험이라는 귀한 지혜를 겸비했으니 더욱 안전한 비상이 되겠지요.
‘글 쓰는 아줌마’도 그 중 한 분야입니다. 보통의 아줌마들이 간직해 왔던 꿈을 실현하는 단계입니다.글을 쓰든 또 다른 것을 시도하든, 꿈꾸는 일에는 늦음이 없는 겁니다.
아줌마이기 때문에 이룰 수 있는 꿈의 폭이 더 넓습니다.
말만으로도 가슴 벅차 오르지 않습니까?
간직했던 꿈들...... 이제 세상 밖으로 펼쳐보기를 바랍니다.
(인터뷰 진행 : 아줌마닷컴 곽지희 / jhkwak@azoomm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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