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인(38, 경기도 의정부시 녹양동)씨는 보험 설계사를 하며 번 월급으로 물질적 후원과 함께 직접 몸으로 뛰며 봉사활동을 하는 아줌마다. 얼마전에는 경기도지사와 의정부시장으로부터 표창장까지 받았단다. 처음에는 오른 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말처럼 자신이 하는 일을 남에게 잘 알리지 았으나,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야 봉사자가 늘 것 같아서 요즘에는 굳이 숨기지 않는다는 김현인 아줌마의 봉사하는 이야기를 들어봤다..
Q. 안녕하세요, 만나뵙게 되서 반갑습니다. 먼저 본인에 대해서 간략하게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A. 결혼한지 12년되는 아줌마입니다..
저는 유치원 교사로 7년간 일을 하다가 유치원 운영을 6년간 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의정부로 이사오면서 유치원을 정리하고 봉사를 시작하게 되었죠. 봉사하면서 보험설계사 일도 함께 했고, 장애자들 교육을 위해 이대 평생교육원에서 발달장애교육과정을 듣고 있는 중이에요. 지난 4월초에 허리를 다쳐 얼마 전까지 치료를 받았고 아직도 몸이 완전하지는 않은 상태에요. 성격이 워낙 활동적이어서 일하는 것을 아주 좋아해요.. 디스크 치료 때문에 2달째 쉬고 있는데 가만히 있을 수가 없네요.. 아직도 몸이 완전하진 않지만 다시 시작해야 겠어요..
Q. 가족에 대해서 소개 좀 부탁드릴께요.
A. 저희 가족은 형(김현인 아줌마가 남편을 부르는 말이다, 38세), 아들(11세), 딸(10세) 4식구에요.. 형은 제가 대학교 2학년때 미팅나갔다가 만났는데, 남자가 너무 예쁘장하게 생겨서 저의 파트너로 그사람만 안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딱 저랑 짝이 되었지 뭐에요.. 호호..
사실 저랑 나이는 같은데 그때 저에게 나이를 속여서 저는 형이라 부르기 시작한 것이 지금도 그렇게 부르고 있어요.. 제가 학교를 다니던 80년대에는 남자선배들을 형이라 불렀었거든요.. 친구처럼 지내다가 결혼하게 되었어요.. 형은 제가 하는 일에 대해서 후원과 협조를 아끼지 않아요.. 현재는 장애인학교 후원이사로 있고, 제가 도와달라고 하는 것은 뭐든지 도와 줍니다.. 너무 고마워요..저희 아이들은 엄마에 대해 불만이 많을텐데도 엄마를 너무 사랑하고 자랑스러워 해요. 우연히 큰아들의 일기장을 봤는데 "우리 엄마는 칭찬합시다에 나와야 될 것 같다. 우리 엄마가 너무 자랑스럽다. 나도 커서 우리엄마처럼 자랑스러운 사람이 되고 싶다"라고 썼더라구요.. 읽는 순간 가슴이 뭉클한 것이 눈물이 흘렀어요. 가족들 모두 제가 하는 일을 이해하고 적극적으로 도와주기 때문에 제가 봉사하는 것이 가능하죠. 가족들에게 항상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살아요..
Q. 봉사활동 하시면서 집안일 하시기 바쁘시겠어요.. 하루 일과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A. 오전에는 6시에 일어나서 아침준비, 빨래 돌리고, 아이들 학교갈 준비 해주고, 간식 준비해 놓고 9시10분이면 출근했어요. 특히 제가 집에 없으니까 우리 아이들이 친구들을 집에 데려와서 놀거든요. 한 10명 되는 아이들의 간식을 준비놓고 외출합니다. 만약에 간식준비를 못하고 나가는 날에는 잠깐 집에 들러서 준비해 줍니다. 봉사일을 끝내고 6시쯤에 집으로 돌아오면 저녁준비하고, 아이들 공부하는거 봐주고, 아침에 빨아 놓은 빨래들 널고, 집안 청소하고, 다림질 등 하죠. 저는 매달 봉사 스케쥴이 짜여 있는데 일요일에는 교회에 가야하기 때문에 일이 없어요..
남들이 힘들지 않냐고 하는데 제가 좋아서 하는 일이라 전혀 힘들지 않아요. 원치 않는 일이라면 돈을 줘도 절대 그렇게 못할 거에요
Q. 봉사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A. 제가 처음부터 맘먹고 사회에 봉사를 해야겠다고 시작한 건
아니에요.. 97년 겨울에 의정부로 이사오면서 전에 하던 유치원은 정리를 했거든요. IMF때 다시 유치원을 시작한다는 건 무리였기 때문에 집에서 그냥 쉬다가 무슨 일이든지 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어 의정부 시청 자원봉사센타에 연락을 했어요. 처음으로 소개해 준 곳이 노부부가 사시는 곳에 가서 빨래, 청소등을 도와 드리는 일이었어요. 집에 가보니 산밑에 천막같은것으로 된 집에 살고 계시더라구요. 집이 무너질 것 같아서 들어갈 때 많이 망설였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의 행동이 너무 부끄럽게 느껴져요. 그분들을 돌봐드리면서 노인봉사의 필요성을 느껴 시작한 일이 하나둘씩 늘어 현재까지 이르게 되었어요.
Q. 그렇다면 봉사하고 계시는 것들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 말씀해 주세요.
A. 저는 매월 봉사 스케줄이 준비되어 있어요. 우선 말기암 환자들을 돌봐드리는 호스피스 봉사는 환자들의 씻겨드리거나 마사지, 말동무도해드려요.. 시각 장애인 봉사는 길안내를 해 드리는 일이지요. 지체장애인 봉사는 식사 보조, 일반환자들을 돌보는 일반 봉사, 자폐아 후원 봉사, 밀알선교단에서 장애인들 교육봉 사, 무의탁노인집에 방문해서 돌봐드리는 봉사, 모녀가정의 자녀 방문 지도,보건소에서 정신지체장애인 한글지도 봉사, 실직자 봉사, 양로원 봉사등을 합니다.. 사실 지금은 허리 때 문에 모두 정지된 상태에요..
Q. 봉사하시면서 후원을 위해서 보험설계사 일도 하신다고 들었어요..
A. 봉사하고 있는 분들의 대부분이 형편도 어려우세요..육체적으로 도와드리는 것도 좋지만 물질적인 도움도 많이 필요하더라구요.. 처음에는 남편 몰래 가지고 있던 비상금 200만원이 2달만에 바닥이 나더라구요..
후원인이 너무 필요해서 각 직장의 간부급을 찾아다니며 한달에 5천원씩만 후원해 줄 것을 부탁했지만 모두 저를 사기꾼 취급하더라구요.. 그렇게 찾아간 분 중 한분이 제가 일하던 보험회사 지점장으로 계시는 분이었어요. 후원해 주시면서 저에게 일해볼 생각이 없냐고 하시더라구요.. 그것을 계기로 보험설계사 업무를 하면서 봉사활동을 함께 했어요.. 월급 중 일부는 제가 지을 양로원을 위해 저금하고, 일부는 제가 봉사하고 있는 분들이나 단체에 후원비로 드렸구요. 제가 쓰기위해서 일한 것이 아니였기 때문에 그랬는지 제가 노력한 것에 비해 항상 결과가 좋았어요.
Q. 가장 기억에 남는 분이나 일이 있으신가요?
A. 기억나는 분들은 너무도 많지만 그분들 중에서도 처음에 봉사를 시작하면서 만났던 할머니, 할아버지가 기억이 생생해요. 할아버지는 중풍으로 10년 넘게 누워서 지내고 계셨고, 할머니께서 병수발을 하시며 살고 계셨죠. 그분들은 수도시설이 없어서 옹담샘에서 물을 길러다 쓰셔야 했을 정도고, 반찬도 간장으로 대신하셨어요.. 그분들은 그렇게 힘들게 사셨지만 얼굴은 항상 편안하고 기쁜 마음으로 생활하셨던 분들이세요..
Q. 봉사하시면서 어려운 점은 없으신지요.
A. 상대방이 마음의 문을 열지 않을 때와, 봉사자들을 가볍게 생각할 때 어렵죠.. 특히 저의 마음을 너무 아프게 했던 분이 계세요.. 97년 2월에 의정부 의료원에서 만난 30대의 실직자였어요.. 처음으로 돌본 실직자였는데 젊은 나이에 간경화로 이미 병색이 짙어 오래 살아야 2년 살수 있을 정도인 사람이었어요. 실직자들은 주민등록이 말소되는데, 주민등록증도 살려주고, 여러가지 얘기를 나누며 용기도 북돋워주고, 용돈이나 병원비도 지원을 하면서 도왔지만 결국에는 제 바람대로 안되고 99년 2월에 객사했어요.결과를 바라고 하는 일은 아니지만 도와드린 분들이 자립해서 잘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 도와드리거든요. 그런데 바람대로 안 되니까 아무것도 하기 싫고 허무하더라고요. 그 슬럼프를 극복하는데 시간이 꽤 걸렸지만 극복하고 나니까 제가 더 성숙했어요. 또 얼마전에는 방송국에서 다큐멘터리를 찍을 일이 있어, 제가 봉사하고 있는 모든 일을 촬영하겠다고 했어요.. 제가 봉사하는 중에 모녀가정의 자녀 학습지도봉사하는 일이 있는데, 그 아이가 지금 막 사춘기라서 예민할 때라 촬영을 안하고 싶었지만 방송작가분이 말이라도 해보라고 해서 얘기를 꺼냈다가 그아이가 마음의 상처를 입었어요..그렇게 되면 자기가 창피한건 생각 못하냐, 선생님도 텔레비전에 나오고 싶어서 그동안 봉사한 거였냐면서 앞으로 오지 말라고 하더군요. 그 학생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저의 뜻을 몰라주니 마음이 아팠습니다.
Q. 봉사하시면서 느끼는 보람이나 생활의 변화는 어떤 것이 있었는지요?
A. 말기암 환자들이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 가득 차 있다가 돌아가시기 얼마전이 되면 하나님을 영접하고 평안을 찾아 편안한 모습으로 돌아가실 때에 보람을 느껴요.. 너무 종교적인가요? 호호.. 그리고 정신지체자들이 마음을 열지 않고, 말도 안 듣고 하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모든 일을 적극적으로 하고, 대화도 가능해지고, 남을 배려하는 행동들을 할 때, 실직자들이 조금씩 자립해 나갈 때 보람을 느껴요. 생활의 변화는 삶이 너무 행복하고 즐겁게 느껴져요. 가족끼리도 더욱 화목해 지고 서로에게 잘 하는 것 같구요. 제가 다른 식구들에게 부족하게 한다 싶으니까 더 잘하게 되고, 또 다른 가족들은 제가 열심히 하니까 더욱 잘해주고요. 저희 가족끼리 하는 말이 있어요. "사랑이라는 나무를 심자, 더불어 함께 하는 물을 주자.." 지금은 그 나무가 무성하게 자라서 너무 좋답니다.
Q. 아줌마들에게 사회 봉사운동이 왜 필요한지 등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A. 여자가 결혼전에는 자기 위주의 생각만 하는데, 결혼후에는 의식이 성숙하게 되죠. 다시말하자면 결혼 후, 나 자신이 아닌 남(남편, 자식, 시댁식구들)에게 베푸는 것에 익숙해 지는거에요 .거기서 눈을 조금만 돌려 이웃을 돌보면 더 좋겠죠.. 가족만을 위해서 살면 하는 일은 많은 것 같지만 보람은 별로 없고 시간이 지나 자신을 되돌아보면 허탈감만 남아요. 그래서 아줌마들이 우울증에 걸리는 거라고 생각되요. 봉사로서 사회에 참여하면 보람과 자신감도 느껴져요. 또한 엄마가 봉사하는 모습을 보이면 아이들도 자연스럽게 보고 배워요. 제 아들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아침에 학교에 일찍 가서 휴지 줍는 봉사를 해요. 아줌마들이기에 시간을 쪼개 쓸 수가 있는 거 같아요.. 일할 수 있는 사람은 아줌마밖에 없다고 봐요. 그리고 아줌마들이 힘을 모아야 복지사회가 이루어 질 수 있어요. 왜냐하면 사무실에서만 일하는 국회의원이나 공무원들보다 어려운 분들을 직접 보기 때문에 현실을 직시하게 되요.봉사는 마약과 같아서 한번 시작하면 자꾸 빠져들게 되요.
Q. 봉사할 수 있는 방법을 몰라서 못하는 경우도 있거든요, 봉사를 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세요..
A. 각 지역의 동사무소, 구청, 시청등에는 자원봉사센터가 있어요. 그곳에 연락하면 개개인의 경력등을 확인하고, 적절한 곳에 배치를 해 줄거에요. 봉사라고 하면 부담을 느끼는데 꼭 하루종일 하는 것이 아니라 하루에 2시간씩만 해도 되거든요. 뜻을 가지고 조금만 관심있게 돌아보면 우리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곳이 너무 많아요.. 특히나 봉사라고 해서 거창하게 방문해서 육체적으로 하는 봉사만이 봉사가 아니에요. 작게 남을 위해서 신경쓰는 것들이 봉사라는 의식을 가져야 해요.. 예를들어 반찬을 조금 더 해서 나누어 먹을 수도 있고, 신문지를 모아두었다가 폐품 수거하는 노인들에게 주는 것도 봉사라고 볼수 있어요. 저희 동네 아파트에 사는 친구 아줌마들 몇명은 모두 신문을 버리지 않고 모아두었다가 폐품수거하시는 노인에게 드리도록 했어요.. 작은 것 같지만 그것으로 생계를 유지하시는 그분들 입장에 보면 아주 큰거죠. 그리고 시장에서 야채 장사하시는 아줌마에게는 시든 야채를 모아서 주도록 했구요..별거 아닌 것 같지만 받으시는 분들에게는 큰 도움이 될 수 있는 거에요.. 절대 어렵고 부담스럽게 생각하지 마시고, 작은 일에서부터 실천하세요..
Q.개인적으로 바라시는 점이나 계획하고 계신 일이 있으시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A. 우선은 지금 허리디스크라서 그동안 하던 봉사활동이 모두 정지된 상태인데 빨리 몸이 나아서 다시 봉사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장기적으로는 양로원을 세우는 것이 가장 큰 목표에요. 봉사일을 처음 시작하면서 10년 계획을 세웠는데, 제가 봉사를 시작한지 3년밖에 안 됐거든요. 아마도 7년이 다 안 걸릴 것 같아요. 목표를 세우게 된 것은 병원에서 자원봉사를 하다 보니 무의탁 노인들이 많이 계시더라구요. 그분들은 IMF이후에 가족들이 병원에 버리고 간 거예요. 그런 분들은 보호자가 없어서 병원에서도 내쫓기는데 비인가 양로원에라도 보내고 싶지만, 그런 곳은 거동이 가능해야지만 받아주거든요. 봉사자가 부족하니까 그곳에서도 거동이 불편하신 분은 돌봐드릴 수가 없는 거예요. 결국 그런 분들은 아무 곳에서도 받아주지 않는데 그런 분들을 제가 돌봐야 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무의탁 노인 외에도 장애인, 나환자, 말기암 환자 등 갈곳 없는 분들을 제가 돌보고 싶습니다. 현재 얘기가 오가는 낡은 건물이 있는데 아마 6월 말 정도면 결정이 될 것 같아요.. 만약에 일이 잘되면 건물 수리하는 것은 걱정 없어요. 제가 알고 지내온 각계각층의 분들이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도와 주겠다고 하시고, 봉사하겠다고 하시는 분들도 많으셔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 정말 열심히 해야 겠어요..
김현인 아줌마의 모습을 보며 자신을 되돌아 보게 된다.. 우리는 너무 자신만을 위해 살아가고 있는건 아닐까? 더불어 사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몸소 실천하는 김현인 아줌마를 비롯하여 남모르게 봉사하며 살고 계신 이땅의 자랑스런 아줌마들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김현인 아줌마의 바람인 양로원 설립이 하루 빨리 이루어 지길 바랍니다.
아줌마 여러분, 대한 민국 아줌마들의 힘을 보여줄 때가 된 것 아닐까요??
지금 이순간도 또 뭔가 새로운 일에 도전하고 있는 수많은 아줌마들을 위하여
- 대한민국 아줌마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