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이에게 들려주는 5·18민주화운동기념일 이야기
- 아줌마닷컴 회원 이정해 님 작성
5월에는 특별한 날들이 참 많지? 5월 첫날인 근로자의 날, 그리고 네가 제일 좋아하는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 성년의 날, 부부의 날, 그리고 아줌마의 날까지 말이야. 아주 많은 기념일이 있지만 네가 그동안 잘 모르고 지나쳤던 날이 하나 있어.
그 날은 바로 5·18민주화운동기념일이야. 명칭에서 알 수 있듯이 이 민주화 운동은 1980년 5월 18일부터 시작되었단다. 5월 27일까지 열흘 동안이나 광주시민과 전남 도민이 벌인 민주화 운동이야. 지금 우리나라는 민주주의가 많이 정착되었지만, 지금부터 36년전인 1980년은 나라가 아주 혼란스러운 때였어.
1979년 10월 26일에 오랫동안 독재를 해 온 박정희 대통령이 김재규라는 중앙정보부장의 총에 맞아 사망하자 전두환과 노태우가 이끄는 새로운 군사세력이 불법으로 정권을 빼앗고 계엄령이라는 것을 선포했어. 이 계엄령이라는 것은 천재지변이나 전쟁 등에만 쓸 수 있는 것으로 군대가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일시적으로 제한하는 명령으로 아주 강력한 힘을 발휘하지.
박 대통령의 사망으로 이제는 민주화가 오는 줄 알고 기대를 품었던 국민들은 새로운 독재세력의 정착을 막기 위해 나라 여기저기서 시위를 했어. 그러자 신군부는 일부 지역에만 실시했던 계엄령을 1980년 5월 17일 전국으로 확대했단다. 그리고 다음날인 5월 18일 전라도 광주에 계엄군을 보내서 평화시위를 하던 시민과 학생들을 무자비하게 총과 칼로 죽였어.
그런데 그 당시에 군사를 지휘하고 통제할 수 있는 권한인 작전 통제권이라는 게 우리나라에 없어서 (사실 작전 통제권을 아직도 미국이 가지고 있단다) 미국에게 그 권한을 넘겨받아야 했는데, 그 당시 존 위컴이라는 한미 연합 사령관이 작전 통제권을 넘겨주는 바람에 계엄군이 광주에 내려갈 수 있었던거야.
만약 그 때 미국이 작전 통제권을 넘겨주지 않았더라면 그렇게 큰 역사의 아픔을 피해 갈 수 있었을 지도 몰라. 미국도 결국 여러가지 국제정세 속에서 자기 나라에 유리한 것을 계산해서 허락했겠지.
광주는 민주화 열의가 높은 지역이었고 야당 세력이 자리 잡은 곳이었어. 참, 야당이 무엇인지 알지? 야당이란 정당 정치에서 현재 정권을 잡고 있지 않은 정당을 말해. 우연히 광주를 쳐들어간 게 아니라 신군부는 처음부터 광주 시민들을 공격하려고 치밀한 작전을 세웠던거야.
광주를 공격해서 성공하면 나머지 지역을 다스리기 편하니까 그런 계획들을 세웠던건데 광주의 시민과 학생들은 총과 칼 앞에서도 끝까지 저항했고 이 민주화 운동은 오늘날 우리나라 민주화 역사에 불씨가 되어 그 이후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어.
가장 아픈 역사가 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계엄군이 광주에 투입되어 선량한 시민, 학생, 어린이, 노인, 심지어 임산부까지 무자비하게 해쳤다는 거야. 계엄군이 쏜 총에 제일 먼저 사망한 사람도 고등학생이었고 가장 어린 사망자가 4살인 것만 보아도 얼마나 무자비한 계엄군이었는지 상상이 되지?
1985년 공식적인 정부발표는 사망자가 겨우 154명인 것으로 발표했지만, 그것을 곧이곧대로 믿는 국민은 거의 없었지. 다치거나 다쳤다가 나중에 추가사망한 사람들까지 포함하면 피해자는 대략 5000명을 넘을 것으로 추측한단다. 그리고 그 때의 악몽을 잊지 못해 정신병에 걸리거나 우울증, 알콜중독에 빠지는 등 그 후유증은 아직까지 남아있단다.
이렇게 끔찍한 일이 있었는데도 그 당시 텔레비전 뉴스에는 단 한마디도 진실이 알려지지 않았고 외신 기자들을 통해 이 사건이 해외를 통해 국내에 알려지자 언론에서는 왜곡보도를 했단다. 광주 시민들을 폭동을 일으킨 세력으로 보도하고 심지어 북한이 개입되었다는 유언비어도 나돌았지. 광주시민을 고립시키고 사건이 외부에 퍼지지 않게 하려고 광주의 모든 전화선을 끊어버렸어. 아마 지금이었다면 사람들이 이 사건을 휴대폰 동영상, 사진 등으로 찍고 전세계에 금방 알렸을거야. 그러나 그 때는 그렇지 못했어. 국민들은 이 사건을 1988년 이후에나 조금씩 알게 된거야.
나중에 전두환은 무기 징역을, 노태우는 징역17년을 받게 되지만, 1997년 12월에 김영삼 대통령의 특별사면으로 풀려났어. 두 사람 각각 2000억원이 넘는 추징금을 내야했는데 노태우는 다 낸 반면, 전두환은 통장에 돈이 29만원밖에 없다고 주장하다가 전 국민에게 비웃음을 받았지.
1997년 뒤늦게서야 정부는 5월 18일을 5.18민주화운동기념일로 제정하고 피해자 보상도 하고, 광주 광역시 북구 운정동에 5.18 민주 묘지도 만들었어. 그리고 2011년 5월 25일 유네스코는 5.18민주화운동 기록물을 세계 기록 유산으로 정했어. 그만큼 이 운동을 세계가 인정해 준거지. 5.18민주화운동은 아시아 여러나라의 민주화 운동에 영향을 주었어.
너도 알고 있듯이 국민이 주인으로 사는게 민주주의인데, 진정한 민주화를 이루는 과정에서 이렇게 아픈 역사가 있었다는 것을 이제는 너도 잊지 않을거라 생각해. 그 때 돌아가신 분들을 생각하며 이제 매년 5월 18일은 꼭 잊지말자. 알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