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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를 필수공익사업으로 지정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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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보다 나은 여성의 삶을 위하여


BY 아줌마닷컴 2001-01-09



 


2001년 첫머리에, 호주제를 주목해 보았습니다. 
결혼 전에는 의례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던 것들이 오히려 결혼 후에는 실제 생활에서 이것저것 호주제와 마주치게 되곤 합니다. 아줌마닷컴의 회원 여러분은 호주제에 대해 어느 정도 관심을 갖고 계시는지요? '호주제폐지운동'과 '부모성함께쓰기운동'의 선봉에 서 있는 고은광순님의 인터뷰를 보시면서, 호주제에 대한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한지 한번 정리해 보는 기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Q 안녕하세요. 늘 열심히 활동하시는 고은광순님, 뵙고 싶었습니다. 먼저, 자신과 가족 소개 좀 해주시겠어요?

A 본인은 호주제폐지운동과 부모성함께쓰기운동을 통해 부계성씨사용강제폐지운동을 하는 고은광순입니다. 호주제폐지운동과 부계성씨사용강제폐지운동은 부계혈통제를 부모양계혈통제로 바꾸려는 운동이라고 이해하면 되겠습니다.
동갑인 남편과 15살, 12살이 된 아이 둘 그리고 시어머니와 함께 삽니다. 저는 어디서건 아이들의 성별을 밝히지 않는데요, 이것은 출생과 더불어 시작되는 '성별 밝힘증'에 길들여져 있는 한국 사회에 대한 일종의 저항이라고 볼 수 있지요.

Q 성함이 매우 독특하신데요? 어떤 의미가 숨어 있는지 설명을 좀 해주세요.

A '고'는 아버지의 성, '은'은 어머니의 성입니다. 부계혈통제에 대한 딴지걸기로 1997년 3.8 여성대회에서 선언된 부모성함께쓰기 운동을 시작하면서 그 이름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어머님도 무척 좋아하시고 아버님도 이의가 없으십니다.
 
 
Q 그럼, 부모성함께쓰기운동의 의미랄까? 부모 성을 함께 쓰면 어떤 점이 좋은지 말씀해 주시겠어요? 그리고 주위 사람들의 반응은 어떠한가요?

A 한국인의 경우 족보, 가문, 대잇기 등의 문화 때문에 부계혈통에 대한 강박감이 있습니다. 아들을 낳지 못하면 대가 끊긴다는 생각 때문에 여아 낙태가 자행되어 왔고요. 난자 정자의 실체가 밝혀진 지도 수십 년이 지나 유전자 지도니 인간 복제니 하는 판에 아직도 '남자는 씨, 여자는 밭'이라는 생각이 팽배해 있지요. 또 '성과 본이 같으면 한 핏줄'이라는 전근대적인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도 있답니다. 결국 이러한 무지는 가정 내 성차별과 사회의 성차별을 불러일으키게 되지요.
이러한 운동에 대해, 여성들의 반응은 상당히 뜨겁습니다. 그리고 부모성을 모두 사용하는 깨인 남성들도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가부장제에 길들여진 여성들, 특별히 '손해'를 보았다고 의식하지 못하는 여성들은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고, 상당수의 남성들은 기득권이 사라질 것에 관하여 피해의식을 갖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들은 남녀평등을 곧 바로 '남성억압'으로 인식하고 말지요. '상호존중', '평등'이라는 단어를 함께 고민해보지 못한 한국의 서글픈 역사 때문이라고나 할까요.

Q 한의사이신데요, 무슨 계기로 호주제폐지운동에 앞장서게 되셨나요? 무슨 숨은 곡절 같은 게 있을 것 같은데요.

A 한의학을 공부하기 이전에 사회학을 전공했었고 사회문제에 개인적으로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동안 아들낳기에 혈안이 된 무수한 사람들을 접하고 되었고, 여한의사 회보를 만들면서 200명의 한의사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해보았지요. 90%의 한의사가 그런 처방을 의뢰받은 적이 있다고 응답했고, 아들을 낳기 위해 20번을 낙태하고 온 환자도 보았다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저도 네째딸로 자라오면서 '느낀 바'가 많았는데, 수십 년이 지나도 한국인들의 남아선호가 그대로인 것이 속상했지요.
기본적으로는 호주제나 부계성씨사용을 강제하고 있는 법에 문제가 있지만 또한 족보, 가문, 대잇기 등의 부계혈통문화가 불식되지 않고는 법을 고치는 것도 쉽지 않다는 생각 때문에 부계혈통문화에 대한 딴지걸기도 아울러 시도하고 있지요. 사실 지구촌 전체를 놓고 보면 부계혈통제를 택하고 있는 나라들은 문화가 아주 뒤쳐진 소수의 나라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많은 한국인들이 부계혈통제나 결혼 후 남편(집)으로 입적하는 것은 마치 '우주의 질서'처럼 잘못 생각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부계혈통만을 인정하거나 강요한다는 것은 여성을 도구, 수단으로 전제하지 않으면 불가능 한 것으로 지구촌 상식으로는 인정할 수 없는 야만적인 것이지요.

 
Q 호주제 폐지를 지지하는 분들의 분포도는 어떻게 되나요? 물론 남자보다는 여자가 압도적으로 많을 것 같은데.... 기혼과 미혼 여성 중 누가 더 찬성을 하는가요?

A 기혼, 미혼을 막론하고 피해를 예측할 수 있거나 경험한 여성들은 호응이 뜨겁고, 열린 사고를 할 줄 아는 남자들도 예전보다 상당히 많이 늘어나 지지를 해주고 있습니다. 고등학생이라도 자신이 '종손'이라며 으쓱해하면서 반대하는 경우도 있고, 50대 남성이라도 "묵은 체증이 다 내려간 듯 시원하다. 감동적이다"라고 말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Q 그럼 결혼이라는 제도 자체에 대한 의견은 어떠신가요? 인류가 살아 온 이래 가장 불합리한 제도가 결혼제도라고 말하는 이도 있는데요.....

A 결혼은 두 사람의 육체와 영혼의 결합을 의미합니다. 그러한 결합을 제도적으로 한쪽은 유리하고 한쪽은 불리하게 규정해서는 안 되는 것이지요. 결혼이라는 제도 속에서 살든지, 혹은 그것을 부정하든지, 모두 개인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하지만, '제도'라고 하는 시스템 자체가 공정해야 합니다. 그래야 선택의 자유도 확대될 것이며 결혼에서 발생하는 행복도도 증가할 것입니다.

Q 전문직 여성으로 지금껏 활발하게 사회 활동을 해오셨는데요, 가정생활과 사회생활을 함께 잘해 내려는 수퍼우먼 콤플렉스 같은 것을 혹시 가지고 계시지는 않으신가요? 집안일과 사회일을 병행해 가는 데 나름대로 정해놓은 원칙 같은 것이 있으신지요?

A 절대로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다. 사소한 일에 신경쓰지 않는다. 설거지나 청소 등에 대한 강박감을 버린다. 늘 사랑한다.(자신을, 가족을, 동료를, 일을...)

Q 여성이 자신의 권리를 찾기 위해 할 수 있는 간단하고 쉬운 일이 있을까요? 특히 전업주부가 할 일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A 살아 있는 동안 자신의 행복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예를 들어, 얼굴 한 번 못 본 시할아버지 제사보다 자기 친정부모님의 생신에 갈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래야만 한 인격체로서 더 행복할 것 같습니다. 여성 전체에 관한 애정어린 관심도 중요합니다. 이를테면, 자매애 같은 거요.
그리고, 생활 속에서 여성의 권리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실천해 나가는 것. 주부들 중에도 호폐서명용지를 다운받아 서명받으러 다니시는 분들도 있답니다.

Q 사회적으로 활발하게 활동하시는 분들에게 언제나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요, '성공'이라는 것을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특히 '여자로서 성공'적인 삶은 어떤 삶이라고 생각하세요?

A 자신이 주변인과 더불어 행복하게 살 수 있으면 '성공'이지요. 그러한 '성공'을 방해하는 불공정과 불합리를 깨는 것은 '성공'으로 가는 지름길이고요.

Q 마지막으로, 호주제 폐지가 꼭 이루어질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그렇다면, 언제쯤 이루어지리라고 보십니까?

A 지난 11월 28일 헌법소송절차에 들어갔으며 이삼 년 걸릴 것이라 합니다. 호주제 자체가 너무나 위헌적이므로 틀림없이 위헌판정이 날 것으로 믿고 있습니다. 혹시 결과가 반대로 나온다면 이것은 나라 망신이 될 것입니다.


평범한 대한민국 아줌마가 호주제에 대해 갖는 생각은 가지가지일 것입니다. 호주제가 무엇인지 관심조차 없는 아줌마부터, 호주제는 꼭 철폐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행동하는 아줌마까지.
하지만 우리의 딸과 손녀 세대가 우리 세대보다 더 인격적으로 정당한 대우를 받으며 당당하게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사회를 만들어나가는 것, 그것은 바로 우리 세대부터 시작되어야 할 일이 아닐까요?  나의 삶보다는 내 딸의 삶이 더 행복한 삶이 되어야 하는 것, 그것은 호주제에 대한 자신의 의견이 어떠하든, 모든 아줌마의 통일된 바람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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