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왕아줌마는, 한겨레 신문사 기자였고, 영화잡지 ‘씨네 21’의 편집자였고, 얼마 전 ‘정글에선 가끔 하이에나가 된다’는 에세이집을 출간한 조선희님입니다.
‘나는 인생에서 그 어떤 일도 안 일어나는 것보다 일어나는 게 낫다는 입장이다’라고 당당히 외치는 조선희님은 소설가의 꿈을 이루기 위해 40 나이에 청년 정신으로 무장한 채, 직장을 그만두고 소설 쓰기의 험난한 길로 들어섰습니다.
조선희님의 소설 쓰기가, ‘악마의 산을 넘어 튼튼한 전사의 몸이 되어 삶의 또다른 언덕에 서게 되는’ 일이길.... 기원하며 인터뷰를 정리하였습니다.
Q. 안녕하세요.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먼저, 가족 소개 좀 해주시겠어요?
A. 남편과 두 딸이 있습니다. 남편은 인터넷기업체를 운영하고 있고, 딸은 큰 아이가 아홉 살 둘째가 일곱 살입니다.
한겨레신문에 있을 때 만난 남편은 결혼할 때 수습 갓 떨어진 '새까만' 후배기자였답니다.
Q. 그러세요. 횡재(?)를 하셨네요. 부럽습니다. 하하! 이번에 ‘정글에선 가끔 하이에나가 된다'를 출간하셨지요? 늦게나마 출간을 축하드립니다. 베스트셀러가 된 걸로 아는데요, 주 독자층이 어떻게 되나요?
A. 이 책의 독자를 조사해 보지는 않았지만, 미루어 짐작컨대 아마도 일을 가진 20-30대 여성들이 중심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제 자신이 일과 가정을 가진 여자로 30대를 살아왔고, 그 책에서 신문기자였던 이야기나 영화잡지인 ‘씨네21’ 영화 이야기보다 오히려 그런 일하는 여자의 이야기에 독자들이 많은 공감을 보여줬으니까요.
Q. 네, 저도 읽어 봤는데, 공감하는 바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소설을 쓰기 위해 직장까지 그만두셨는데요, 어떻게 그런 용기를 내게 되셨나요? 무슨 특별한 계기라도 있었나요?
A. 별로 용기는 아니었어요. 왜냐하면, 소설 쓰는 건 정확히 13년 전부터의 꿈이어서, 늘 언젠가는 기자 생활 때려치고 소설 써야지 하고 생각했으니까요.
Q. 남자든 여자든 나이 40이면 누구나 심리적 변화를 겪는다고 하더군요. 저도 개인적으로 알랜 치넨의 '인생으로의 두번째 여행'이란 책을 읽고 도움이 되기도 했답니다. 혹시 조선희님께서도 그런 갈등을 겪으셨나요?
A. 저는 나이 마흔이 된다는 것이 특별히 부담스럽거나 울렁거리거나 하지는 않았어요. 나이 마흔 되던 해 신년에 <씨네21> 편집장 칼럼을 '좋은 나이 마흔'이라는 제목으로 쓰기도 했지요.
나는 서른이 넘으면서 나이 먹어가는 게 좋았어요. 분별력이 생기는 것, 아이를 낳아서 기르는 것, 사람을 보는 눈이 생기는 것, 일이 많아지는 것, 그런 변화가 좋았어요. 그래서 뭔가 일을 시작할 수 있는 나이, 그리고 자기 자신에 대해 뭔가 책임을 질 수 있는 나이, 그런 때가 마흔이 아닌가 싶어요.
Q. 전문직 여성으로 지금껏 활발하게 사회 활동을 해오셨는데요,가정생활과 사회생활을 병행해 가는 데 겪는 어려움이라든지, 아니면 나름대로 정해놓은 원칙 같은 것이 있는지요?
A. 가정생활과 사회생활을 병행해 나가는 것, 거기는 어떤 원칙도 안 통하는 것 같아요. 어떤 원칙을 세워놨다 하더라도 어쩔 수 없이 늘 쩔쩔매고 허둥지둥하고 후회하고 그렇게 되는 게 아닌가 싶어요. 그야말로 가랑이 찢어지는 일이지요.
그렇게 가랑이 찢어지는 여자들을 '슈퍼우먼'이라고 고상하게 부른다지만, 나는 책에서 '슈퍼우먼이 되지 말라'고 했어요. 집과 직장, 두 가지를 다 완벽하게 잘 해야한다는 강박을 갖고 있으면 몸이 부서지고 마음이 병들어요.
집에서는 남편과 아이들에게 '나는 직장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서 타협과 협조를 요구하고, 직장에서도 역시 '나는 밤에 침대에 누워서도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벌떡 일어나 메모하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직장에서 내가 집안일 때문에 이따금 시간을 낼 수도 있는 것'이라면서 양해를 구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사실, 나는 직장생활을 하는 동안 소문난 일중독이어서 집안을 그야말로 폭격 맞은 것처럼 해놓고 다녔답니다. 그리고 둘째 아이는 생후 2개월에 대구 시어머니네 내려보냈다가 6살이 되어서 데려왔답니다. 둘째 아이를 너무 오래 떼어놓은 후유증을 앓고 있고 그 점에 대해 후회하고 있거든요.
Q. 결혼이라는 제도가 여자에게 특히 손해인 제도라는 말도 있는데요, 결혼을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리고 맞벌이 부부로서 가사 노동 분담은 하고 계시나요? 하고 계신다면 어떤 식으로 하시는지요?
A. 아직 가부장제적 관습이 지독하게 남아 있는 이런 마초 사회에서는 가정이 여자의 희생을 먹고 사는 게 사실입니다. 그런데 똑같은 강도로 남자들은 자신들이 가족을 위해서 희생하고 있다고 생각하죠.
가족이라는 게, 그 안에서 어느 누가 다른 사람을 위해 희생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이미 병들어 버린 거라고 생각해요. 각기 자기 꿈을 밀어나가고, 돈도 같이 벌고, 그런다면 훨씬 마음이 편해지겠죠.
하지만, 거기까진 좋았는데, 부부가 같이 바깥일을 해도 집안일은 대개 여자의 몫이 된다는 것이죠. 우리도, 예전에 청소는 함께, 밥은 내가, 설거지는 남편, 뭐 그렇게 업무분담을 했고 그런 분업체제가 잘 안 돌아가서 맨날 남편과 마치 초등학교 때 옆짝하고 '지우개 넘어왔어' 그러듯이 투닥투닥 많이도 싸웠답니다.
Q. 직장 다니는 아줌마는 여가를 즐길 틈이 없는 걸로 아는데요, 어떠세요?
A. 집에도 일, 직장에서도 일, 그러니 여가라는 건, 주말에 가족 단위로 어딜 놀러간다거나 하는 것 외에 시간을 따로 내기란 거의 불가능하죠. 특히 아이들이 어릴 적엔 말이죠.
나도 어코디언을 참 배우고 싶었는데 직장을 그만둔 다음에야 마침내 소원을 이룰 수 있었어요. 또 산에 다니길 좋아했는데, 역시 직장을 그만두고서야 평일의 한적한 산에 오를 수 있게 되었답니다.
Q. 엄마로서, 딸에게 이것만은 꼭 해주고 싶다. 또는 앞으로 이런 여성이 되었으면 한다, 하는 바람 같은 게 있으신가요? 자녀 교육관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A. 나는 내 딸들이 솔직하고 씩씩했으면 좋겠어요. 늘 꿈을 잃지 않고, 사회에서 자기 자리를 갖길 바래요. 내 딸들이 누구의 아내와 엄마로만 살아가지 않길 바라거든요.
Q. 앞으로 하시고 싶은 일, 또는 쓰고 싶은 작품은요?
A. 원래는 책을 쓸 때만 바쁘지 책 내고 나면 한가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더군요. 지금은 책을 낸 뒤라 이런 인터뷰나 강연이나 그런 일정들 때문에 뜻밖에 바쁘답니다. 그래도 틈틈이 미뤄놓았던 책들을 읽고 있는데, 책을 쓰는 것도 재밌지만 책을 읽을 때가 제일 행복해요. 물론 아주 좋은 책일 경우. 앞으로도 책을 실컷 읽고 싶고, 언젠가는, 아마도 2년쯤 뒤엔 책을 낼 수 있게 되겠죠.
Q. 저희 아줌마닷컴 회원들은 책과 영화에 대한 관심이 지대하답니다. 게시판 가운데서도 사이버작가방이 가장 활성화되어 있지요. 아줌마닷컴 회원들에게 꼭 권하고 싶은 책과 영화... 생각나시는 대로 많이 추천해 주세요.
A. 글쎄요. 무얼 하고 살든, '할만큼 했어.'라고 말할 수 있으면 되는 거 아닐까요?
조선희님이 한겨레 신문사 기자였던 시절부터 ‘씨네21’ 편집자였던 시절까지, 참으로 당차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부럽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하지만 그 당찬 사람이 이제는 소설가로 거듭나려 한다. 그동안 쌓아 왔던 모든 일을 뒤로 하고, 어려서부터 꿈꾸어 왔던 일을, 이제 나이 40이 넘어서 시작하려 한다는 것이다. 40 나이에 그냥 평범한 아줌마에서 소설가가 된 박완서님이 떠올랐다.
나이가 무슨 소용이랴!
자기가 열망하는 꿈이 있고, 그 꿈을 이루고자 노력한다면, 나이가 몇 살이든 언제나 청년인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