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년을 일찍 죽는다 해도 정말 시인이 되고 싶었다!
2000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의 시 부문 당선자는 51살 최영신 아줌마였다. 충남 금산에 있는 용문 초등학교 12회 졸업이 공식 학력 전부인 최영신님은 이복형제가 섞인 16남매 중 한 딸로 태어나 12살 철들면서부터 죽어라 집안일만 하다가 16살 시골 처녀 몸으로 전주로 가출을 했다.
떡볶이 장사, 옷가게 점원, 화장품 가게 등등 열댓 가지 직업을 전전하였고, 편물학원, 타자학원도 기웃거려 보았다.
정말 안 해본 일이 없을 만큼 고생을 하다가 21살에 결혼을 하여 22살에 큰딸을 낳았다. 그러나 운수사업에 손댔던 남편이 빚만 지고 실패하자 최영신님은 다시 직접 돈벌이에 나서야만 했다.
미장원과 인삼 보따리 장수를 거치며 한두 되씩 쌀을 팔아 연명하던 시절을 지냈다.
그러나 그런 시절 동안 세 딸을 대학까지 가르쳐 레스토랑 주인, 디자이너, 간호사 등으로 키워냈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구리무 한번 못 바른 세월에' 몸을 방치하다 80년대 초 결핵성 임파선으로 3년 동안이나 목 수술을 받아야 했다.
그러던 중 엄마의 인생을 살라고 부추긴 큰딸 덕에 시 공부를 시작했다.
Q. 안녕하세요. 날씨가 많이 쌀쌀해졌습니다. 건강은 어떠세요?
A. 안녕하세요?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한때는 철분빈혈, 무릎관절염, 하혈 등으로 병원 3곳을 다녀야 하는 몸이었지만, 다 좋아졌습니다. 문제가 된다면 한 자세로만 있기 때문에 무릎과 손가락 마디마디 관절염으로 약을 먹고 있지요.
Q. 본인과 가족 소개 부탁드립니다.
A. 제 나이는 올해 51세이고 충남 금산에서 태어나 용문 초등학교를 졸업했습니다. 남편과 세 딸이 있고요.
Q. 상당히 늦은 나이에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하셨는데, 시인이 된 계기와 가장 힘이 되어준 사람은요?
A. 전 초등학교 때부터 소설가가 되고 싶다는 막연한 꿈을 꾸었습니다.
많은 책과 영화 속 주인공들을 사랑하게 되던 제가, 많은 사람들이 걸어가는 방향으로 가지 못하고 검붉은 흙더미 쌓인 길 아닌 길을 가느라 젊은 시절은 많이도 상처받고 엇갈리게 되었습니다.
그런 저를 밤마다 통곡하도록 재촉하고, 터지는 비명으로 달래고 얼래며, 잃어가는 참모습을 잃지 않도록 저 자신과 싸움을 걸게 한 세월이 35, 6년이 흘러서야 제가 바라던 꿈으로 도전하게 되었습니다.
배움이 다 끝난 세 딸의 권유로 저는 시인이 될 수 있는 길을 들어섰고 셋째와 둘째는 퇴근하고 돌아와 2년 동안 많은 시를 늦은 밤까지 컴퓨터로 쳐주었습니다.
힘들고 어렵기만 한 시 공부로 저는 점점 미쳐 버렸습니다.
날 새우기가 일쑤고 점점 말을 잃어가고 문밖 출입을 하지 않고 먹지 않고 씻지 않는 그런 긴장의 나날이 계속 되었습니다.
말과 웃음을 잃은 제게서 가족은 모두 불편해하고 저는 꼭 시인이 되기 위한 공부의 어려움으로 몹시 지쳐갔습니다. 하지만 시인의 어머니로 전 세 딸들에게 영원히 남고 싶었습니다.
그렇지 못하면 그들의 사랑에 보답하는 길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가장 힘이 되어준 사람은 역시 제가 사랑하는 세 딸들입니다.
Q .시인이 된 후 달라진 점은요?
A.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나 봅니다.
신춘문예 당선 전에는 당선이 최고의 목표였지만, 당선이 되고 시인이 되니 되기 전보다 어려운 일들이 많았습니다.
그것은 마치 임신한 여인이 배가 부른 고통 한 가지 이유로 아이를 세상으로 얼른 내보내고 싶어하나 덜컥 아이가 태어나면 열거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한 어려움으로 부딪힙니다.
그 때 여인들은 말하죠. 차라리 뱃속에 넣어 놓고 다닐 때가 더 편하고 좋았다고...
좋은 시를 쓰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을 해야하는 제게 또 달라진 점이 있다면 저를 알고 있는 지성인이나 그렇지 못한 사람들 중간으로 서서 이쪽도, 저쪽도 얼른 다가 서주지 않는 벽에 부딪히고 있지요.
저는 시인이 되기 전보다 더 고독한 길로 시를 노래하며 가고 있습니다.
Q. 작품 활동은 어떻게 하고 계시나요?
A. 편지, 일기식 에세이집과 시를 정리해서 출판사에 원고를 얼마 전에 넘겼고, 현재는 에세이를 쓰고 있는 중입니다. 더러는 큰 도시의 초청으로 강연을 나가고 시만 열심히 쓰고 있습니다.
Q. 어떤 시를 쓰고 싶으신가요?
A. 언제나 가까이 있는 죽음의 이면에 들어서고 싶습니다.
살아있는 제 자신을 토대로 상상세계에서 성찰로 들어서는 죽음을 보고 싶습니다. 바로 제가 들어서게 될 세계를 생명을 잡고 건너가보는 것이지요.
Q. 딸에게 어머니로서 가장 해주고 싶은 말은 무엇입니까?
A. 저는 세 딸들에게 결혼을 권하는 편이 아니었습니다.
아무렇게나 자식을 낳고, 아무렇게나 성장하게 하고, 아무렇게나 살다가, 아무렇게나 죽어가는 목숨... 그나마 삶이 터져 나갈 듯이 많아 치열한 경쟁시대에 저는 딸들에게 항상 말했습니다.
적어도 이 세상에 태어난 생명이라면 이 세상이 어떻게 생겼는가 돌아보고 죽어야 한다고 말입니다. 만약에 딸들이 결혼을 해서 아줌마가 된다면 저는 철저한 어머니 노릇을 하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그것은 곧 애어른이 되지 말고 정말 어른이 되라는 말이지요.
어머니는 자식의 거울입니다.
작은 것, 작은 도덕 하나에서부터 사람이 하는 모든 일에 몸 사리지 않고 열정적으로 달려드는 늘 긴장하고 사는 삶을 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Q.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아줌마의 위치는 어떻다고 생각하시나요?
A. 역시 2001년 아줌마들의 문제는 남성우월 사상이 앞에 우뚝 서있겠지요. 그러나 남성보다 신기하게도 여성 자체가 남아선호도가 높다는 사실이 더 큰 문제이겠지요.
인간이 평등하다는 걸 먼저 깨달아야 이 나라 아줌마들의 위치가 남성과 수평을 유지할 수 있다고 봅니다.
저는 믿습니다. 지금 제 글을 읽고 있는 세대의 아줌마들은 이 나라에서 가장 핵심층이라는 걸 말입니다. 그들은 왕성한 열정을 가진 나이와 지혜와 의욕으로, 그들은 제일 크게 다가오는 성별 파괴 문제를 추구해 나갈 것이고 여자가 모자라 이 나라에 찾아올 험악한 재앙을 미리 예방할 수 있는 이 나라의 기둥처럼 중심에 우뚝 서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벌써 아줌마 부대의 목소리가 메아리 쳐옵니다.
Q. 시인이 되고 싶은 아줌마들에게 해주실 말씀은?
A. 시인이 되고자 하려면 육체의 껍질을 모두 벗을 수 있는 용기와 희생이 필요합니다.
즉, 관념과 가식뿐인 흉허물을 훌렁 벗고 빨갛게 달아오른 한 송이 꽃으로만 세상에서야 합니다. 그 꽃은 자신의 마음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거울을 가져야 합니다.
시는 나부터 성찰하고 들어서서 깨달아 가는 일이죠. 바로 그 깨달을음 노래하는 것이 시라고 생각합니다.
왜 어렵게 쓰느냐, 쉽게 감정으로 들어선 시가 좋다고들 하지만 감정에서 머무르고 있는 시는 남는 게 없겠지요. 시의 의미를 잃지 않으려는 생명을 좀 더 나아가게 하는 길머리를 잡고 첫 연을 엽니다.
여러분들이 제가 30권의 시집을 읽고 제 몸이 30개로 나뉘어지지 않는 것을 통탄하며 그 많은 시인들의 쓸쓸함과 좌절, 슬픔으로 눈물 뚝뚝 떨어뜨리며 모두를 품어주고 달래주지 못하는 안타까움에 아파하는 저를 이해할 수 있습니까.
오랫동안 세상으로 실망하다 오래 사랑하고 싶어한 것들이 30권의 시속에 전부 잠재하고 있다는 사실에 흥분하고 뜨거워오는 몸, 이해하시겠습니까.
갑자기 아름다워 보이는 세상 그 세상으로 내 몸을 열어 다 받아들이고 싶어 안달이 난다면, 또 이해가 되겠습니까. 아이들처럼 웃어대고 뛰어다니다 아무 곳에나 철푸덕 앉아 소리를 잃고 길가에 밟히기만 하는 풀잎 하나에도 이 세상으로 말하고 싶어 저렇게 내보내고 있는 강렬한 색채들 그 풀잎에 볼을 대며 눈물짓는 저를 또 어떻게 이해해 주시겠습니까.
시는 모두를 사랑으로 품었을 때, 뽀송한 연두빛 눈을 뜨고 첫 연을 서성입니다. 허공을 뛰어넘어 날카롭게 빚어진 선으로 빤히 나를 올려다보기도 합니다. 절제된 언어의 맛, 많은 여운을 돌아 생각의 공간을 최대한 넓히고 들어서서 다시 행간을 서성이다 새 살 돋으며 달리는 시를 봅니다.
여러분! 시를 사랑할 줄 아는 여러분들이 바로 시인입니다.
Q.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이나 바라는 일이 있다면요?
A. 제 남은 시간은 참으로 짧습니다.
자유롭게 어디라도 여행하고 싶습니다. 아무도 없는 산, 바다, 작은 포구, 깊은 절, 아니면 별이 주먹만하게 보인다는 지리산 어느 산 봉 하나에 걸터앉거나, 아니면 제주도도, 거제도도 아닌 작은 어떤 섬, 그 곳에서 하늘과 구름과 별님의 마중을 받고 너그러이 우주의 질서를 받아들일 수 있는 여행, 전 그런 곳을 배회하면서 세상과 멀리 떨어지는 연습을 하고 싶습니다.
이제부터 시는 여러분들의 차례입니다.
지금 당장 한 줄을 써보십시오. 하면 됩니다. 한없이 해안선을 따라가며 거기 그리움을 풀어 놓으세요. 언젠가 그 그리움은 당신 앞에 가장 의미로운 것들로 다가올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긴 글을 읽어주셔서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결혼하고 아이 낳고 정신없이 살다 보면, 우리 아줌마들은 흔히 젊은 날 꿈꿔 왔던 나의 꿈을 그냥 꿈으로만 밀어놓고 살게 됩니다.
아이 때문에, 경제적인 이유로, 정신적인 여유가 없어서, 나이가 너무 많아서 등등… 우리가 우리의 꿈을 밀어놓을 이유는 수도 없이 많습니다.
그러나 최영신님을 인터뷰하면서, 우리가 손가락 꼽아가며 늘어놓는 그 이유들이 얼마나 한심한 이유들인지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나의 꿈이 과연 무엇이었던가? 되돌아보며,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지금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곰곰 생각해 보았습니다.
대한민국 힘있고 아름다운 우리 아줌마들, 과연 내 꿈은 무엇인지, 되새겨보는 치열한 계절이 되었으면 합니다.